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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인조(仁祖) 14년인 1636년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인조임금이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 태종(太宗)에 굴욕적인 항복(降伏)을 하자 훈련원(訓鍊院) 판관(判官)인 박사익(朴仕益)이라는 사람이 판관직(判官職)을 버리고 경주시 천군동(千軍洞) 마을에 낙향(落鄕)하여 살다가 여생(餘生)을 마쳤다.
그의 아들 박의일(朴義日)이가 손곡(蓀谷)이 살기가 좋은 곳이라 생각하여 1675년 이곳으로 이주(移住)해 와 자자손손(子子孫孫) 학문(學問)을 숭상(崇尙)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손곡동(蓀谷洞) 282번지에 요수재(樂水齋)가 있는데 1678년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鑑正)에 중직된 지당(知堂) 박만홍이가 지은 독서강학당(讀書講學堂)인데 원래는 손곡동(蓀谷洞) 산31번지의 기슭에 있었는데 오래된 건물(建物)로 홍수(洪水)가 나서 산사태로 인해 허물어져 버렸다. 1925년 후손(後孫)들이 지금의 자리에 중건(重建)하였으며 이때 당호(堂號)를 공자(孔子)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따온 요수재(樂水齋)라 했다고 한다. 박씨문헌록(朴氏文獻錄)과 지당실기(知堂實記)가 2015년 10월 9일 유네스코(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으로 등재(登載)되었다.
손곡동(蓀谷洞) 289-1번지에 송암고택(松庵古宅)이 있다. 1839년 3월 4일 기둥을 세우고 3월 8일 상량식(上樑式)을 하였는데 송암(松庵) 박문화의 손자 박경순이가 건축(建築)했다.
5칸의 한옥목조(韓屋木造) 겹집인데 벽은 수수대로 얽어 메고 그 위에 황토(黃土)를 바르고 기둥과 대들보는 소나무를 통째로 가공(加工)하여 사용(使用)하고 마루는 통나무를 한 면만을 자른 후 표면(表面)을 고르게 하여 깔았으며 부엌문 받침은 원목(原木) 그대로 설치하는 등 요즘은 볼 수 없는 건축양식(建築樣式)인데 최근에 박씨문중(朴氏門中)에서 새롭게 리모델링(remodeling)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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