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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대표
행정학 박사
윤 해 수 | ⓒ 황성신문 | 손곡동(蓀谷洞)은 동북으로 해발(海拔) 약 200여m의 귀산(龜山)이 동내를 감싸안고 있는 듯한 형국(形局)으로 보문관광단지 경주신라C,C의 2/3이상이 손곡동(蓀谷洞)에 속하고 있으며 경주시 천북면(川北面) 물천리(勿川里)와는 북쪽으로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동쪽 손곡동(蓀谷洞) 산20번지 등의 정상(頂上)을 경계로 암곡동(暗谷洞)과 접하고 있어 동과 남쪽과 북쪽이 산과 언덕으로 병풍(屛風)처럼 드리워져 있고 서쪽과 서북쪽으로 양쪽이 골짜기를 이루며 확트여 있다. 보문관광단지 동편 국립공원관리사무소앞으로 하여 암곡(暗谷)의 갈림길에서 좌회전(左廻轉)하고 경주신라C,C를 안고 돌아 마을앞을 지나서 곧장가면 천북면 동산리(東山里)의 천북면(川北面)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손곡동(蓀谷洞) 355번지 일대를 연정(淵亭)골이라 하며 연정(淵亭)못 아래 암곡동(暗谷洞) 371-2번지에 옛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절터가 있어서 절골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신라(新羅)때에도 연정(淵亭)골에 사람들이 거주(居住) 했으며 절에 신도(信徒)들이 많이 다녔을 것이라 생각된다. 조선시대(朝鮮時代) 말에 선비인 손의일(孫義日)이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開拓)하여 일구었는데 자기의 성(姓)을 따라 손실(孫室)이라 했다고도 하며 풀이 많이 우거져 있다 하여 자기의 성(姓)에 풀초(草)자를 더하여 손실(蓀室)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임진왜란(壬辰倭亂) 전, 후로 최씨(崔氏)와 박씨(朴氏), 그리고 고씨(高氏)가 이주(移住)해 와서 살았다고 한다. 아무튼 1914년 면제실시로 손곡리(蓀谷里)로 개편(改編)되었고 1986년 5월 1일부터 법정동(法定洞)인 손곡동(蓀谷洞)이 행정동(行政洞)으로는 보덕동에 속한다.
인조(仁祖) 14년인 1636년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인조임금이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 태종(太宗)에 굴욕적인 항복(降伏)을 하자 훈련원(訓鍊院) 판관(判官)인 박사익(朴仕益)이라는 사람이 판관직(判官職)을 버리고 경주시 천군동(千軍洞) 마을에 낙향(落鄕)하여 살다가 여생(餘生)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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