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신라의 귀신다리, 길달문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시대의 일이다.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혼이 화신한 인물 “미인(美人)”과 “도화랑(桃花嫏)”이 7일간 동침한 후 태기가 있었고, 그 후 달이 차서 한 남아(男兒)를 낳았다. 그의 이름을 김 비형(金鼻荊, 581년 ~ ?)이라고 지어 불렀다.
이 사실을 듣고 그 당시 26대 진평왕은 궁중에 “비형”을 데려다 기르더니 나이 열다섯 살 때에 이르러 집사를 시켰다. 밤마다 대궐을 빠져 나가 신월성(新月城, 오늘날 반월성)을 지나 서천(西川) 가에서 귀신들을 데리고 놀다가 새벽에 절의 종소리가 울릴 때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 일을 알았던 진평왕은 비형에게 명하여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神元寺)”의 북쪽 냇가에 다리를 놓도록 하였다. 그러자 비형은 즉시 귀신들을 동원시켜 밤새 큰 돌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를 “대석교(大石橋)” 또는 귀신다리인 “귀교(鬼橋)”라고 불렀다.
진평왕은 크게 감동하여 비형에게 귀신 중에 인간이 되어 나라 일을 맡을 만한 자가 있거든 말하라 하였다. 그러자 비형은 여러 귀신 중에 곧 “길달(吉達)”을 바로 추천하였다.
임용하고 보니 과연 충직함이 무쌍하였다. 왕은 대단히 기뻐하여 자식이 없는 각간 임종(林宗)의 아들로 삼게 하였다. 그 후 임종은 길달을 시켜 흥륜사(興輪寺) 남쪽에다가 문루(門樓)를 세우고 그곳에서 자게 하였다. 그래서 “남문루(南門樓)”라 하던 것을 “길달문(吉達門)”이라 바꿔 부르게 하였다.
어느 날 길달은 인간 세상에 혐오를 느껴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려다가 비형이 이것을 미리 알고 곧 잡아서 사형에 처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본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놀라게 되어 그 후로는 비형을 피하여 모두 도망갔다 한다.
“신원사(神元寺)”는 오늘 날 오릉과 서천의 사이에 있었다. 이 “귀교(鬼橋)”는 서천과 남천의 합수(合水)되는 부근에 있었다. 지금은 큰 바윗돌만 몇 개 남아있다. 신라의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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