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면 도덕 교과서에 실린 “방아타령”의 주인공을 기억한다. 백결선생에 대하여 궁금증과 함께 알고 싶었던 것이 너무나 많았던 무서운 내용의 홀림에 빠졌다. 방아타령이 귓전에 들리듯 아련하다.
백결선생은 경주 낭산(狼山) 밑에 살았다. 이름도 성도 알 수 없으며, 가세가 빈곤하여 늘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다. 마치 그 모양은 메추리가 매달린 것 같았다고 해서 “백결(百結)”이라고만 불렀다. 금(琴)을 타며 노래 부르고 다녔다. 인생의 희로애환을 달래며 살았다. 방아 찧는 소리로 연주하여 아내를 위로하였다. 이때의 음악이 후세에 전하는 “대악(碓樂)”, 즉 방아타령이다.
낭산 산마루에 드론 타고 내려다본다면 마치 두 귀가 쫑긋하게 오른 모양의 산이 있다. 경주 시내로 들어가면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릉, 외로이 자리 지키는 효공왕릉, 사천왕사지, 오른쪽으로 하강선 마을, 산마루 7부 능선에 선덕여왕릉, 오른쪽 떨어진 들판에 선덕여왕 아버지 진평왕릉, 경주 황복사지, 북으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이야기가 있는 도림사지, 북으로 황룡사지, 돌아 나오면 낭산 끝자락에 문창후독서당, 그 아래 능지탑지가 보인다.
백결선생은 어떤 출신성분인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하지만 선생은 박제상의 아들이라는 내용으로 기록된 것으로 영해(寧海)박씨 족보에 있다.
영해박씨는 박제상을 시조로 삼으며, 박제상의 아들 문량(文良)으로 그가 곧 백결선생이다. 실성왕 13년(414년) 신라충신 박제상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된다. 제상은 왜국에서 불에 타 죽었고, 두 딸은 부인을 따라 함께 자결했다. 가운데 딸 아영이 살아남아서 다섯 살 동생 문량을 양육하였다. 아영이 왕의 동생인 미사흔과 결혼하게 되어 함께 따라갔다.
문량은 임금의 특명아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지냈다. 그는 각간 이수현(李壽玄)의 딸과 혼인하였다. 65세 478년에는 17관등급 최고 벼슬인 이벌찬(伊伐飡)까지 올랐다. 아첨하는 귀족들이 너무 많아서 이를 개탄하고, 여섯 장의 상소문을 올려서 상소문 제도의 효시가 된 것이다.
상소문 올리고 관직을 초개같이 버렸다. 눈이 펄펄 날리는 세모(歲暮) 초옥에서 솔가지로 흐릿한 불을 밝힌다. 거문고를 끌어안는다. 방아타령을 백결처럼 고운소리 덩더꿍~으로 연주한다. 저절로 다리 들어 올라가게 만든다. 실제 방아 찧는 소리로만 들리는 것은 나만의 무서운 중독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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