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신라 표암공 광림대 가는 길 | ⓒ 황성신문 | |
| | | ↑↑ 대구 한비수필학교장
명예문학박사
수필가 이영백 | ⓒ 황성신문 | 신라의 달빛 받아 조상들이 살았다. 신라왕들의 세 성과 백성들의 육촌에 여섯 성이 있다. 그래서 아홉 성이 된다. 왕성은 박(朴)ㆍ석(昔)ㆍ김(金)씨요, 육촌에 살았던 백성들의 성씨는 이ㆍ정ㆍ최ㆍ손ㆍ설ㆍ배씨 등이다.
박씨사당은 숭덕전, 석씨사당은 숭신전, 김씨사당은 숭혜전이다. 이씨(알평)시조를 모신 곳은 표암재(鼻祖 - 분적종 “車城”), 정씨(지백호)시조를 모신 곳은 백운재, 최씨(소벌도리)시조를 모신 곳은 상서장, 손씨(구례마)시조를 모신 곳은 문효사, 설씨(호진)시조를 모신 곳은 분황사의 원효에 대한 제향, 배씨(지타)시조를 모신 곳은 경덕사 등이 있다.
월성이씨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 온 옛터는 표암(瓢巖)으로 경주시 동북방 약 2km 소금강산 남쪽 논호림(論虎林)으로부터 동천동에 있다. 비각 세우고, 제장(祭場)을 만들어 신성시하고 있는 이 암산(巖山)을 “표암(瓢巖)”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자그마치 전설을 세 가지나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알천 양산촌 촌장 이 알평(謁平)공의 강탄지(降誕地)라고 한다. 그곳에 비석은 약 200여 년 전에 세웠고, 평지건물은 근년에 세웠다.
둘째, 바위가 드러남은 서라벌에 해를 끼친다하여 표주박을 심었더니 그 잎이 퍼지면서 바위를 덮었다하여 표암이라는 말로 전해오고 있다.
셋째, 표암공은 박혁거세 왕을 도와 나라의 기초를 세운 지혜와 용맹을 겸한 장부였다. BC18년(단기 2315년)에 표암공이 마한(馬韓)에 사신으로 갔다. 마한 왕이 “너희 나라는 원래 우리 속국인데 어찌하여 공물을 보내지 않느냐? 너희 놈들은 예의 모름이 심하니 이후에 만약 반성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수십 명의 병졸이 좌우로 늘어선 가운데 위엄 있는 호통을 쳤다. 그러나 이로 겁을 낼 표암공이 아니었다.
“우리 서라벌은 하늘이 도와 나라를 이룩하였으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고 나랏일에 힘쓰시어 먼 나라일지라도 우리 모두 우러러볼 따름입니다. 그러하되 거절함이 없이 옛 정의를 지키어 사신을 보냈거늘 도리어 신을 대함이 이다지도 무례하시오! 위협을 가한다고 두려워 굽힐 자 서라벌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오!” 이와 같은 늠름한 태도로 답변하였다.
마한 왕은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좌우 대신이 말림으로 내전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탄강지 소금강산에 광림대(光臨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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